‘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데카르트라 하면 떠오르는 말이다. 그는 근대철학을 열어젖힌 인물로 유명하다. 그렇지만 그는 수학에서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데 바로 '좌표평면'의 발명이다. 미적분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데에는 바로 데카르트의 좌표평면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철학뿐만 아니라 수학에서도 그는 근대를 열었다. 제목을 철학하는 수학자로 할지 수학하는 철학자로 할지 고민했다. 그에 대해 알아보자.
1. 출생
르네 데카르트는 유럽에서 종교개혁의 바람이 휩쓸고 프랑스에서는 위그노 전쟁(1562-1598)이 끝나갈 무렵 그리고 머지않아 30년 전쟁(1618-1648년)을 앞둔, 딱 유럽이 중세를 벗어나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태어났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한창 임진왜란의 와중이었다.
데카르트는 1596년 3월 31일 파리 남쪽으로 300km 떨어진 투렌 지방(Touraine)의 소도시 라에(La Haye, 현재는 그의 이름을 따서 데카르트 시로 개명)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브르따뉴 지방을 관할하는 법원의 법관이었다. 즉, 요즘으로 치면 지방법원 판사다. 동시에 시의원도 겸했다. 귀족은 아니었지만 성공하고 부유한 부르주아집안이었다. 데카르트는 생후 1년 2개월 만에 어머니를 여의였다. 사인은 결핵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데카르트도 이미 결핵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고비를 넘겼던 데카르트는 항상 몸이 약했고 누워서 생각에 잠기길 좋아했으며, 늦잠자길 좋아했다. 아버지는 게으르게 보이는? 그의 생활방식을 그대로 두었다.

※위그노 전쟁
프랑스 남부는 전통적으로 로마가톨릭에 저항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자연스럽게 이 지역에는 많은 신교도들이 거주했는데, 프랑스에서는 이들을 위그노(Huguenot)라고 불렀다. 위그노들은 주로 상공업에 종사하면서 서서히 성장하여 일정한 정치세력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때 이들을 견제하려던 프랑스 가톨릭 세력과의 갈등에서 발발한 전쟁이 바로 위그노전쟁이다. 1572년 8월 24일 성바르톨로메오(St. Bartholomew) 축일의 대학살은 이 종교갈등의 최악의 사건이다. 기즈공작을 위시한 가톨릭파들이 축제에 참석한 위그노들을 대량학살한 사건이다. 이 위그노 전쟁은 1598년 낭트칙령으로 끝이 난다. 이러한 종교갈등의 광풍은 데카르트로 하여금 믿음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게 하고 진정한 진리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 생각된다.
<옆에 있는 영화 제목은 '여왕 마고'1994년 작품이다. 프랑스 역사상 제일 잔인했던 하루. 성 바르톨로메오 학살을 배경으로 한다. 많은 상을 받은 것으로 알고있고 재밌었는지 재미없었는지는 기억나진 않는다. 학살하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볼만한 작품이다. 그리고 예쁜 이자벨 아자니가 나온다.>

2. 어린 시절과 청년시절
1606년 열살무렵 르네 데카르트는 기숙학교에 진학했다. 학교는 예수회 계열의 라 플레슈. 중세 신학을 기반으로 한 스콜라 철학의 명문이었다. 8년간에 걸쳐 철저하게 중세식의 수업을 받았다. 스콜라 철학은 아이러니하게도 논리학이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 이 학교에서의 수업은 '방법서설'에 영향을 주었으리라 짐작된다.
1614년 이번엔 아버지는 데카르트를 푸아티에(Poitiers) 대학 법학과에 입학시켰다. 아마도 가업을 잇길 바랬을 것이다. 1616년 졸업한 그는 고향에 내려와 또 수학과 철학에 심취했다. 답답했던 아버지는 데카르트를 파리 사교계로 보내버렸다. 아마도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면 생각이 바뀌길 바랬을 것이다. 이 때 데카르트는 파리 사교계에서 신나게 놀았던 것으로 보인다. 춤도 추고 도박도 즐긴 것으로 쓰여있다. 그렇지만 이내 싫증을 느끼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수학과 철학에 몰두했다.
1618년 데카르트는 갑자기 군대에 지원하기로 했다. 처음엔 네덜란드 신교 측에 참가했고, 그러다 1620년에는 바이에른 막시밀리안 대공의 구교 측으로 참전했다. 그가 종교적인 열정때문에 30년 전쟁에 끼어든 것은 아니었음에 틀림없다. 신교측에도 구교측에도 가담한 이유는 이 곳에서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보고 싶었고 전쟁을 통해 세상에 대해 좀더 알고 싶었던 욕구때문이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역시나 데카르트는 병영의 막사에서 전략전술에 대한 생각보다는 철학적 사색에 잠기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천장을 날아다니는 파리를 보며 파리의 위치를 어떻게 수학적으로 표현할지 고민했던 그는 데카르트평면이라고도 불리우는 x축과 y축으로 이루어진 직교 좌표계를 발명해 낸다
3. 네덜란드의 생활
데카르트는 퇴역한 뒤 이탈리아와 스위스 등등 유럽 곳곳을 여행했다. 또 세상이 궁금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돌연
1628년 겨울에 데카르트는 자신의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프랑스를 떠나, 자유로운 학문 분위기가 지배적인 네덜란드로 이주했다. 네덜란드에서 암스테르담, 하아렘, 에그몬드 등의 도시로 여러 차례 주거지를 옮기면서 더러는 개인 교사로 혹은 은둔 학자로 생활을 했다. 세상의 이것저것 사교, 도박, 전쟁, 여행 등등을 경험한 뒤 이제서야 학문에 뛰어들면 되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에 대한 관찰이 끝이 난 것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데카르트의 네덜란드 생활은 멀리서보면 백수의 나날이었고 데카르트 본인에게 있어서는 오랜 학문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곳에서 그는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았다.(정확히 말하면 결혼이 아니라 사실혼관계였다. 데카르트의 그녀가 하녀이었기 때문이다. 이름은 헬레나이다.) 데카르트의 나이 서른 아홉, 두 사람 사이에서 딸이 태어났는데 이름은 프란시느라고 하였다. 딸바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원칙적으로는 사생아라서, 겉으로는 조카인 셈 쳐야 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그녀 나이 5살에 열병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데카르트는 인생에서 가장 슬픈 사건이 딸의 죽음이라고 했다. 그는 몇날 며칠을 쓰러져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몇 년 후 헬레나와도 결별했다. 데카르트는 이후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1637년 이 해에 《방법서설》을 출판했다. 원 제목은 다음과 같다.
<이성을 잘 인도하고, 학문에 있어서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서설, 그리고 이 방법에 관한 에세이들인 굴절광학, 기상학 및 기하학>
(Discours de la méthode pour bien conduire sa raison, et chercher la verité dans les sciences)
즉 이 책은 방법서설, 광학, 기상학, 기하학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들이 데카르트를 철학자로만 인식하는 것은 오해이다. 데카르트는 자연과학에 많은 관심이 있었고 그 중에 제일은 수학이라 생각했다.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대상에서 명료하고 논리적인 수학적 사고만이 자신을 진리로 이끌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수학문제를 푸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수학적 사고를 하는 습관을 가지기 위해 수학은 공부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말이 먼저 앞서는 경우가 많은데 말은 아끼고 고민을 먼저 하라.
4. 죽음
데카르트를 둘러싼 죽음에는 여러가지 의혹들이 있다.
1649년 스웨덴 여왕 크리스티나의 초청을 받아 스톡홀름에 왔다. 여왕은 처음 3개월 동안 데카르트를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1650년에 들어 여왕은 데카르트를 궁전으로 불러 철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여왕을 가르치기 시작한 지 14일 만에 갑자기 병이 났다.
1650년 2월11일이었다. 병이 난지 7일 만이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사망한 그의 공식적인 사인은 폐렴이었지만 그의 죽음에는 여전히 의혹이 남아있는 상태이다. 어쨌든 그의 유해는 스톡홀름에 묻혔다. 그런데 16년 뒤 스웨덴 주재 프랑스 대사는 그의 유골을 은밀히 파내 프랑스로 이송한다. 이후 파리의 생트 주네비에브 성당에 안치된 유골은 영면에 드는 듯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기의 혼란 속에서 데카르트의 유골은 프랑스 유물박물관으로 이관된다. 그게 두 번째 이송이다. 이후 유골은 생제르맹 데 프레 성당으로 세 번째 이송된다. 그렇지만 세 번째 이장과정에서 머리뼈가 없어진 걸 발견하기 전까지 누구도 그의 유골이 슬금슬금 사라지고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누가, 언제, 왜, 그의 유골을 훔쳤을까?
물론 그의 두개골은 현재 다시 파리박물관으로 돌아왔다. 누가 그의 유골을 훔쳤는지, 왜 훔쳤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파리로 돌아오게 되었는지는 이 글을 읽고 있다면 한번 직접 찾아보시길. 이와 관련된 책도 있다.

5. 데카르트의 수학사적 의의
1)좌표평면의 창안
좌표평면의 창안은 수학사의 일대 혁신이다. 누군가에겐 좌표평면 하나 발견한게 뭐가 대단한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무엇이나 처음 시작하는 것이 제일 어렵다. 0을 만든 것은 대단한 것이다. 음수를 발견한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리고 복소수를 수직선이라는 일차원을 벗어나 이차원의 수(이는 다음에 설명)로 인식한 것도 대단한 것이다.
좌표에 대한 생각을 바탕으로 함수가 발달하는 토대를 마련했고 또 변화량을 관찰하는 미적분이 발달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2) 기하학의 대수적 고찰
유클리드 이래로의 기하학을 '논증기하학'(중학교 때 배운 기하학)이라면 데카르트 이래로 좌표에 도형을 올려놓고 도형을 탐구하는 것을 '해석기하학'이라 한다. '해석기하학'의 의의는 기하학적인 고찰을 대수적인 고찰로 바꾸는 것에 의의가 있다. 대수학과 기하학은 다른 영역이었는데 데카르트가 이를 합친 것이다. 도형만 관찰해서 이끌어 낼 수 없었던 많은 결론들이 도형을 좌표평면에 올려놓고 관찰하면서 많은 성질들을 이끌어 낼 수 있게 되었다. 고등학교에서 원, 포물선, 타원, 쌍곡선을 배우는 이유는 모두 데카르트 덕분이다. 학생들 누군가는 데카르트에게 몹시 감사할 것이고 누군가는 몹시 욕할 것이다.
3) 대수적인 문제의 기하학적 고찰
반대로 대수적인 문제들을 기하학적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문을 열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없이 중학교 때를 생각하면 중 2-1 연립방정식 문제를 이후에 일차함수에서 두 직선사이의 관계로 파악하거나, 또는 고등학교 때 이차방정식의 풀이를 배운 뒤 이를 이차함수와 연결시켜 사고하게끔 유도하는 것은 모두 데카르트 덕분이다. 데카르트에게 있어 양은 모두 선분의 길이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대수 계산의 결과는 도형에 포함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데카르트는 먼저 대수적인 문제를 기하적인 문제로 바꿔서 생각했고 기하적인 문제를 좌표평면 위에 올려놓고 해석기하학으로 관찰했다. (이러한 사고과정은 오늘날에도 잘 이루어지진 않는다. 나는 학생들이 푸는 과정을 보는 것을 즐기는 편인데 대수적으로 열심히 풀다가 안풀리면 어떻게 할지 모르는 학생들을 볼 때가 많은데 이를 함수나 도형의 방정식으로 바꿔서 생각하게끔 유도하는 것이 나의 역할 중 하나이다.)
4) 미지수 x의 도입
데카르트는 대수학을 기하학과 연결시킨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대수의 기호법조차 완성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미지수를 x,y,z로 두는 것도 다 데카르트에 의해서이다. 여기엔 재밌는 일화가 있다. 책을 출판하기 위해 미지수를 숫자 대신 어떤 기호를 쓸까 고민하던 데카르트에게 인쇄소의 식자공이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지 않아 여유분이 많았던 x를 추천했고, 데카르트는 ok했다. 생각해보면 영어공부할 때 x를 잘 쓰지 않기는 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그리스 시대에 디오판토스가 수를 미지수로 두고 사용했다. 그리고 데카르트 이전에 프랑스 수학자 비에트(1540-1603)가 미지수와 기지수를 알파벳 모음, 자음으로 구별하여 사용하였는데 오늘날과 같이 기지수는 a,b,c..., 미지수는 x,y,z로 사용하게 한 것은 데카르트 덕분이다.
이상 부산+김해 (정시+수리논술) 씨앤씨였습니다.

출처
「다시 보는 철학자: 데카르트의 삶」 『딴지일보』 2018
https://www.ddanzi.com/?mid=ddanziNews&document_srl=500917112
「데카르트는 살해되었는가 」『시민사회신문』 이동희 http://www.ingo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2964.
「중고교 기하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연구: 해석기하를 중심으로」 『인하대학교 교육대학원』 김은진,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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